평생공부의 힘! 독보적인 사유를 만드는 북클럽다이브 에디터 레오선생님입니다. 4월 세 번째 주 시간 큐레이션 한 책은 제1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은정 장편 ‘소나기밥공주’를 가져와 봤어요.
오늘의 수업은 12페이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선생님, 쟤가 우리 아빠보다 더 많이 먹어요.”
남자애들이 식판에 잔뜩 담긴 공주 밥을 보며 킥킥거렸다. 공주를 따라서 밥을 더 담으려던 현미가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았다. 식판에 소시지를 올려 주던 선생님이 남자애들을 보며 눈을 흘겼다. 공주는 남자애들 말이 거슬렀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남자애 하나가 공주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렸다.
“살 안 찐 돼지, 소나기밥 돼지.”
공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그래, 나 소나기밥 돼지다. 그래서 어쩌라고!”
선생님도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남자애들은 결국 선생님한테서 꾸중을 듣고 입을 꾹 다물며 자리로 돌아갔다.
공주는 자리에 앉자마자 세 숟가락쯤 밥만 듬뿍 떠먹었다.
빨리 밥양을 줄여 놔야 아이들이 덜 힐끔거릴 것 같았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자!’
공주는 요즘 급식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다짐하고는 한다. 애들이 놀려도 어쩔 수 없다.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면서부터 학교 급식이 하루 세 끼 중 유일하게 제대로 먹는 끼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통해 아이들에게 ‘서사’라는 것을 설명했어요. 사실 서사에 대해 설명하자면 논문 한 편을 탈탈 털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지만 생략했습니다. 왜냐고요? ‘서사’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습니다. 서사하면 떠오르는 것을 묻자 하나같이 모두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스토리란 또 무엇일까요? 요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 스토리와 같은 의미일까요? 서사란 글자 그대로 글로써 기록한 역사입니다.
서사(書史)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사적이라고 한다면 아주 장황하고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지지요. 서사라고 하면 어떤 친구들은 반지의 제왕을 언급합니다. '반지의 제왕'하면 떠오르는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겪은 그 간절하고, 처절한 이야기들이 절절하게 느껴지죠? 여기서 우리는 프로도가 호빗족이라서 작고 보잘것없다고 놀리지 못합니다. 프로도가 호빗족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보입니다. 정보는 오늘 날씨가 맑다 흐리나 정도로 접하고 나면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저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죠. 소나기밥공주의 주인공 공주가 밥을 많이 먹는다는 하나의 정보가 ‘소나기밥공주’라는 별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정보는 아이들에게 가십거리가 되면서 공주를 납작하게 만듭니다. 살 안 찌는 돼지라고 말이죠. 세상이 나를 어떠한 정보단위로 쪼개서 이해하고, 그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여전합니다. 늘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인데요.
공주를 따라서 밥을 더 담으려던 현미가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았다.
현미는 공주처럼 놀림 받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겠네요. 밥을 더 먹는 것보다 놀림을 안 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꿋꿋하게 더 퍼먹습니다. 놀리는 것이 영향을 주기는 했습니다. 단지, 눈치를 받기 싫어서 첫 세 숟가락을 소나기처럼 퍼먹는 장면이 나오죠. 누군가가 나에게 돌을 던져도 쓰러지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서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정보단위로 쪼개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로서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서사는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과정이죠.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연결하고, 인과관계를 설정하며, 사건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면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꿈과 환상이 중요하다고 했었죠. 꿈과 환상도 자기만의 서사 속에 다져진 신념과 믿음의 결정체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북토크에서 한 친구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이라는 정보를 바탕으로 친구들이 별명을 지어줘 자기 이름이 별로라는 것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성이 ‘문’이라 친구들이 문어 대가리라고 놀려댔죠. 제 이름이 아주 싫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자기만의 서사가 있는 아이라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의 장면을 보시죠.
공주야! 우리 공주! (아빠가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며)
공주는 그 부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정말이지 자기와는 영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집도 살아가는 모습도 '공주'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아빤 왜 내 이름을 공주라고 지었어? 공주처럼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아빠는 공주가 태어났을 때 자신이 왕이 된 것 같아 딸의 이름을 공주로 지었다고 하죠. 이름이란 오래 들여다보면 달라집니다. 우리는 공주처럼 이름을 오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 서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러면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가 인식될 것이고,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글쓰기의 주제가 ‘나의 이름으로 서사 만들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어떤 의미로 지었겠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서사의 첫걸음이 되겠지요.
저는 확신합니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세상이 어떠한 정보로 공주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들어도 자기만의 서사로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놀리고, 내가 가는 길에 돌을 던져도 자기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아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걸음을 할 것입니다. 서사가 있는 아이는 대체 불가능하고 독보적인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를 꼭 필독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서사에 대한 강력한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참고해주세요.
🔗허무에 빠진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한병철 <서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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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공부의 힘! 독보적인 사유를 만드는 북클럽다이브 에디터 레오선생님입니다. 4월 세 번째 주 시간 큐레이션 한 책은 제1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은정 장편 ‘소나기밥공주’를 가져와 봤어요.
오늘의 수업은 12페이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선생님, 쟤가 우리 아빠보다 더 많이 먹어요.”
남자애들이 식판에 잔뜩 담긴 공주 밥을 보며 킥킥거렸다. 공주를 따라서 밥을 더 담으려던 현미가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았다. 식판에 소시지를 올려 주던 선생님이 남자애들을 보며 눈을 흘겼다. 공주는 남자애들 말이 거슬렀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남자애 하나가 공주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렸다.
“살 안 찐 돼지, 소나기밥 돼지.”
공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그래, 나 소나기밥 돼지다. 그래서 어쩌라고!”
선생님도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남자애들은 결국 선생님한테서 꾸중을 듣고 입을 꾹 다물며 자리로 돌아갔다.
공주는 자리에 앉자마자 세 숟가락쯤 밥만 듬뿍 떠먹었다.
빨리 밥양을 줄여 놔야 아이들이 덜 힐끔거릴 것 같았다.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자!’
공주는 요즘 급식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다짐하고는 한다. 애들이 놀려도 어쩔 수 없다.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면서부터 학교 급식이 하루 세 끼 중 유일하게 제대로 먹는 끼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통해 아이들에게 ‘서사’라는 것을 설명했어요. 사실 서사에 대해 설명하자면 논문 한 편을 탈탈 털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지만 생략했습니다. 왜냐고요? ‘서사’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습니다. 서사하면 떠오르는 것을 묻자 하나같이 모두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스토리란 또 무엇일까요? 요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 스토리와 같은 의미일까요? 서사란 글자 그대로 글로써 기록한 역사입니다.
서사(書史)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사적이라고 한다면 아주 장황하고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지지요. 서사라고 하면 어떤 친구들은 반지의 제왕을 언급합니다. '반지의 제왕'하면 떠오르는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겪은 그 간절하고, 처절한 이야기들이 절절하게 느껴지죠? 여기서 우리는 프로도가 호빗족이라서 작고 보잘것없다고 놀리지 못합니다. 프로도가 호빗족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보입니다. 정보는 오늘 날씨가 맑다 흐리나 정도로 접하고 나면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저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죠. 소나기밥공주의 주인공 공주가 밥을 많이 먹는다는 하나의 정보가 ‘소나기밥공주’라는 별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정보는 아이들에게 가십거리가 되면서 공주를 납작하게 만듭니다. 살 안 찌는 돼지라고 말이죠. 세상이 나를 어떠한 정보단위로 쪼개서 이해하고, 그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여전합니다. 늘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인데요.
공주를 따라서 밥을 더 담으려던 현미가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았다.
현미는 공주처럼 놀림 받는 것이 두려웠을 수도 있겠네요. 밥을 더 먹는 것보다 놀림을 안 받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움찔하며 주걱을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꿋꿋하게 더 퍼먹습니다. 놀리는 것이 영향을 주기는 했습니다. 단지, 눈치를 받기 싫어서 첫 세 숟가락을 소나기처럼 퍼먹는 장면이 나오죠. 누군가가 나에게 돌을 던져도 쓰러지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서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정보단위로 쪼개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로서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서사는 단순히 사건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과정이죠.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연결하고, 인과관계를 설정하며, 사건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면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지난 시간에 꿈과 환상이 중요하다고 했었죠. 꿈과 환상도 자기만의 서사 속에 다져진 신념과 믿음의 결정체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북토크에서 한 친구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름이라는 정보를 바탕으로 친구들이 별명을 지어줘 자기 이름이 별로라는 것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성이 ‘문’이라 친구들이 문어 대가리라고 놀려댔죠. 제 이름이 아주 싫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자기만의 서사가 있는 아이라 그렇지 않습니다. 아래의 장면을 보시죠.
공주야! 우리 공주! (아빠가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며)
공주는 그 부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정말이지 자기와는 영 안 어울리는 이름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집도 살아가는 모습도 '공주'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아빤 왜 내 이름을 공주라고 지었어? 공주처럼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아빠는 공주가 태어났을 때 자신이 왕이 된 것 같아 딸의 이름을 공주로 지었다고 하죠. 이름이란 오래 들여다보면 달라집니다. 우리는 공주처럼 이름을 오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 서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죠. 그러면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가 인식될 것이고,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글쓰기의 주제가 ‘나의 이름으로 서사 만들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어떤 의미로 지었겠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서사의 첫걸음이 되겠지요.
저는 확신합니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세상이 어떠한 정보로 공주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들어도 자기만의 서사로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놀리고, 내가 가는 길에 돌을 던져도 자기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아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걸음을 할 것입니다. 서사가 있는 아이는 대체 불가능하고 독보적인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를 꼭 필독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서사에 대한 강력한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 참고해주세요.
🔗허무에 빠진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한병철 <서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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